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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세다 잠들고 싶을 때마다 쓰는 넋두리

돈 세다 잠들고 싶은 나이, 27살💛

by 영원한이방인 2021. 12. 5.

이란 무엇일까.

모두가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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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창시절 돈을 멀리 하였다. 

돈을 가까이 하는 자 '속물!' 땅땅땅. 혼자 마음의 결론을 내리고 나는 삶에서 '돈'보다 한참 우위에 있는 '꿈'을 찾아 떠나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꿈은 아무리 잡으려 해도 손에 닿지 않는 것. 결국 고3의 나는 방황 끝에 그저 그런 지방사립대 4년제에 들어갔다. 문송한 대학생활 4년을 마치고 취직을 준비하거나 면접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 학교와 연계된 그저 그런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꿈은 꿈으로 남긴지 오래. 이제는 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인지도 모호하게 남은 채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삶을 영위했다. 꿈 많던 몽상가에서, 현실적인 직장인이 되는 동안 모든 목적과 결과는 '돈'이었다. 돈은 대체 뭘까? 나는 돈으로 무엇을 하려는 걸까? 돈은 어느 정도가 필요한가? 정말 그렇게 많은 돈이 실제로 나에게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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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청년내일채움공제 3년, 아아 그것은 노예생활 그 자체였노라. 

중소기업에 처음 입사하니, 청년내일채움공제라는게 생겼다. 지금은 없어진 노예계약 3년을 그시절 나는 아무 생각없이 덜컥 했더랬다. 파릇파릇했던 20대 초반의 막내는 고단한 3년을 겪으며 이제는 왕고참 닳고 닳은 막내가 되었다. (그 3년 동안 참 많고 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거쳐갔지만 남는 것은 40대 이상의 과장급 분들... 여전히 막내는 나였다.) 회사를 다니며 정말 관두고 싶었던 적이 30번 정도 되었지만 꾹 참았다. 아니 억지로 참음당했다. 실제로 그만둔다고 몇 번 말씀드렸지만 '청내공은 타야지, 시드머니는 있어야지.'라며 꿈많던 몽상가 청년을 한 순간에 현실로 돌아오게 하며 붙잡았다. 그 즈음, 내 가치관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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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적금만 알던 예전의 내가 아냐. 이젠 달라졌어, 주식, 코인 All in ! 

내 가치관이 변한 가장 큰 이유는 친오빠다. 경제관념이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던 나에게 시드머니의 중요성을 세뇌시켰다. 지금 너 시기에는 200만원을 벌면 그중 180은 저금해야한다며, 집에서 다니는데 뭐 그렇게 쓸 돈이 많냐는 그 잔소리는 좋든 싫든 나에게는 지금의 시드머니를 모을 수 있게 해준 결정적인 시발점이 되었다. 오빠는 주식으로 수익을 내는데, 나도 주식이 하고싶은데... 공부도 안 한 과거의 나는 아직 주식에는 손 댈 때가 아니라는 오빠의 소리가 최큼 듣기 싫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어느정도 시드머니를 모아야 한다는 점과 주식과 코인을 시작하려면 정말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큰 가르침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돈은 뭉치려는 속성이 있어, 시드머니가 모이지 않은 채 짤짤이로 했다면 그 돈은 그대로 부자들 주머니로 흡수됐을 것이다. 주식 계좌를 트는 게 어려워 1년 가까이 미뤘던 나. 이제는 주식과 코인에 전재산을 몰빵한 어른이로 자라났다. 하지만 불안하지는 않다. (쬐끔 불안하긴 하지만 아주 쬐끔이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은 것으로 치겠다.) 복리의 마법, 나도 한 번 느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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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느껴보는 기록의 중요성.

퇴사한지 일주일. 수중에는 돈으로 환산하자면 6천만원 정도가 있다. 이도 정확하지 않다.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적금과 주식, 코인, 널부러져 있는 여러 카드들과 통장들. 나는 혜택을 따지지도 않고, 기록하지도 않으며 되는대로 막 살아왔다. 왕복 출퇴근 시간이 거의 동남아 갔다올 수준인 상태에서 모든 것을 신경쓰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라도 기록하려 한다. 기록하지 않았던 시절의 그 나름의 이유가 이제는 사라졌다. 이제는 정말 독일인처럼 정확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잡고, 머리만 큰 용두사미의 삶을 은퇴하기 위해서 나는 기록할 것이다. 내 삶에는 여러 시작들이 있었지만 모두 끝을 보지 못했었다. 20대가 가기 전에 하나는 끝을 보고 싶다. 그 끝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Go, Go!